생각해보면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아이돌에서 연기돌이 됐다. 여느 연기돌처럼 그룹의 후광은 없었다. 주인공은 물론 비중있는 조연도 아니었다. 아역 연기로 시작했다. 그때다 24살이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섰다. 2014년, 8번째 작품을 만났다. 이름이 알려진 수많은 연기자들이 고사했던 케이블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방송 직후 신드롬을 일으켰다. 자연히 그는 러브콜 1순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청년은 지독히도 담담했다. 쏟아지는 찬사에도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 취하지 않을겁니다. 전 그럴 수 없어요. 왜냐하면…."

임시완이 완생을 향해 걷고 있다. 성급하게 뛰지도, 그렇다고 게을리 쉬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하던대로 숨을 고르며 걸을 뿐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었다. 임시완의 고백이다.

① 스무살, 임시완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1년 후, 그는 가수의 길을 택했다. 연습생 기간을 거쳐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생각보다 그 길은 혹독했고 암담했다.

☞ 연습생 생활을 할 때는 '죽을만큼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돌로서 끼가 없었어요.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할 때도 있었고요. 그런 상황들에 마주할 때마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가수로 데뷔를 했습니다. 프로의 세계에 들어오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같았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필요하지 않은 돌'이랄까…. 다 그만두고 전공을 살려서 직장생활을 해볼까도 생각했죠. (이하 임시완)

②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연기를 접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로 임시완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데뷔 2년 만이었다. 할 수 있는게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에게 연기는 일종의 돌파구였다.

☞ 운이 좋게 연기를 하게 됐습니다. 사실 특별히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해보고 싶다'는 정도였죠. 그렇게 시작한 연기였는데 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제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게 생겼다는 안도감이 느껴졌어요.

단 한 번도 연기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가슴 한 켠에는 배우 지망생에게 죄송함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열정이 제 것보다 덜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전 그 분들보다 더 쉽게 기회를 얻었어요. 많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전 더 열심히 해야해요.
 
③ '해품달'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파고 들었다. 조연부터 차곡차곡 시작했다.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트라이앵글'을 거쳤다. 그리고 2014년, '미생'을 만났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 '미생' 시놉시스를 보고, '하고 싶다'보다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난 장그래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감히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장그래를 보면서 가수 생활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과 장그래가 겪는 감정들이 꽤나 맞닿아 있었거든요. 장그래에 공감이 잘 됐습니다. 연기할 때도 제 경험을 살리면 되겠다고 생각했고요.

④ 호기롭게 시작한 '미생'. 그런 마음가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임시완은 스스로가 장그래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부족했다고 했다. 자신의 공감대보다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 '임시완=장그래'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저보다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더 강하고 두터운거 있죠? 그때부터 '제가 장그래입니다'라고 말하기가 죄송스러웠습니다. '미생'은 만만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연기적으로도 부족했습니다. 점점 제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요? 중후반부터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더 그랬습니다. 스스로 한계가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아등바등 연기했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된다는걸 다시 한 번 알게 됐어요.

⑤ 게다가 '미생'에는 연기에 잔뼈 굵은 배우들이 총집합했다. 이경영, 이성민, 김대명, 박해준, 변요한, 강하늘 등을 보면서 스스로를 점검했다. 그들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익혔고, 배우의 책임감을 배워갔다.

☞ '미생'은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작품에 미쳐 있는 사람이었어요. 저 역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걸 뛰어넘는 열정을 봤습니다. 그마저도 뛰어넘는 에너지가 가득했어요. 제가 더 열심히 안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건 당연했죠.

하면 할수록 연기를 잘하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무게감이 있었고요. 책임져야한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어요. 그랬기에 '미생'은 제게 즐긴다기보다는 버티는 촬영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⑥ 그 노력으로 '미생'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대본, 연출, 연기 3박자를 고루 인정받았다. 그중에서도 임시완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연기돌을 뛰어넘는 배우라고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임시완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 드라마 반응에는 최대한 동떨어지려고 했어요. 호응에 덤덤해지려고 했죠. 이제와 말이지만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기분은 좋아 죽겠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그걸 더 보고 즐기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됐으니까요.

연기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얻은 교훈이었죠. 함께 연기했던 선배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기분에 취하지도, 부담을 느끼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이건 제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닌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⑦ 임시완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2014년을 보냈다. 그의 2015년도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임시완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기대와 달리 거창한 목표도, 치기어린 각오도, 없다고 했다. 그게 임시완의 새해 계획이었다.  

☞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됐어요. 그보다는 다가오는 것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지금의 저는 욕심을 부려서 만들어진게 아니니까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일들을 수긍하면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도 바라는 점이 있다면, 새해도 2014년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또 올지 모르겠어요. 그러지 않아도 되니 새해도 그저 물 흘러가듯이 무사히 잘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⑧ 돌이켜보면, 임시완에게 연기는 신의 한 수 였다. 존재감이 생겼고 자신감도 키웠다. 그럴수록 어두웠던 지난 날의 기억도 또렷해졌다. 임시완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이유다. 

☞ 지금도 제가 필요한 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수였을 때보다는 지금이 다행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적어도 연기를 할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마음이 드는 정도에요.

언젠가는 제가 필요없는 돌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오겠죠. 그래도 전 그 날이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날이 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 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 뿐입니다.


원문출처 : http://openapi.naver.com/l?AAAB2LSw6DMAwFT2OWKCSBkkUWLZ9Vdz1BFLsCVQk00FbcviaWJc8b670/lA4LQwdmgFaf0N7AdNkYNsV+rGQj/bbiRYf10omajNK10wKVwPZCjXRYoyFyHosp0dNO+76CuoIcec9uGd2XUumXwCK4OfJJ5LCMUwQ1hgUJVH9/9CCbMCPzRp55m7HiUImGw5IfWilml1nkuehK/QGeQ045yAAAAA==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Next
/ 55
sweetsi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