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시완에겐 온전히 자신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생각의 깊이가 존재하는 듯했다. 스스로 공상하는 걸 좋아한다고 밝혔던 만큼 오랜 시간 체화된 듯한 자신만의 생각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술술 털어놓곤 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영화 '변호인'의 진우가 임시완 그 자체로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고 성찰하고 분석해서 비로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캐릭터들이었다.
생애 첫 스크린 주연작인 영화 '오빠생각'(감독 이한)의 한상렬도 그렇게 관객들과 마주하게 된 인물이었다. 임시완이 연기하고 표현하기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던 한상렬이 지닌 어른의 정서는 긴 시간 자신과 대면하다 재발견된 캐릭터의 특성과 같았다. 아비규환의 전쟁 한 가운데서도 올곧은 성품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자기중심을 지닌 한상렬을, 임시완은 진정한 어른이라고 불렀다.
100억 대작, 첫 스크린 주연작. 다소 부담스럽고 묵직한 무게의 이 단어들이 임시완을 짓누를 수 없었던 이유도 그 생각에 있었다. 주·조연의 구분 없이 연기를 했다거나,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다는 고백은 입 바른 소리가 아니라 긴 생각 끝에 찾은 정답이기도 했다. 자신이 출연했던 전작 성공의 부담을 넘어서서 한상렬을 온전히 스크린에서 빛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내 연기는 이제 막 괄호 열고 괄호 닫는 식을 푸는 수준 아닐까." 선배 송강호, 이성민과 함께 연기하며 그들의 연기를 두고 '미적분'이라 표현하고 자신의 연기를 '덧셈, 뺄셈 수준'이라고 표현했던 그가 이제 자신의 연기를 이렇게 자평했다. 거짓말로 연기하기 싫고, 보기에 편안한 배우가 목표라는 그에게서 다음 작품에서의 가파른 성장이 또 다시 감지될 수밖에 없었다.
▲ '오빠생각'이라는 또 한 번의 도전
Q. 첫 스크린 주연작이 100억 대작이라는 부담감이 있었을 법하다.
A. 제작비 보다도 다른 여타 작품 보다 선배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희준 형도 있고, (고)아성이도 나보다 연기 경험이 많은 선배이지만 이제껏 이성민, 송강호 선배와 찍어왔던 현장 보다 의지할 곳이 상대적으로 적어졌다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 됐던 것 같다.
Q. 그런데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A. 아이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고 합창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이 나와서 쉬운 작업은 아닐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캐릭터보다 그 부분에 매료된 것이 더 컸다.
Q.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감정 역시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A. 전쟁의 아픔은 다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감정들 아닌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간접 경험으로 자문을 구해서 연기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이때까지 연기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든 한상렬에 가까운 정서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 작품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한상렬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어른의 정서였다.
Q. 한상렬을 통해 깨달은 어른의 정서란 무엇일까.
A. 한상렬은 전쟁으로 인해서 가족을 잃고, 가정이 파탄이 나고, 주변 사람들 모두를 잃은 인물이다. 갈고리는 그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보면 변절된 인물인데 한상렬은 끝까지 자기 중심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어른은 오히려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인 것 같다.
Q. 진지하고 신중하고 올곧은 면이 임시완과도 많이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A. 어떤 캐릭터든 연기하는 배우와 닮아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상렬은 극대화된 것 같다. (웃음) 어떻게 보면 한상렬을 연기하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서도 한상렬은 늘 한결 같은 사람이구나. 이해하기엔, 한상렬은 너무 어른이었다.
Q. 지휘 연기나 피아노 연주 역시 도전이지 않았나.
A. 특정 연기보다도 각 작품 자체가 내겐 도전이다. 작품이 결정되자마자 4~5개월을 연습했는데 쉽지 않았다. 지휘는 정형화된 동작이 없어서 더 어려웠다. 피아노도 대역을 쓸 수 있었지만 그것도 다른 부분에서 쉽지 않았을 거다. 잘 치는 척 연기하는 게 간지러운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차라리 직접 치는 게 속 편할 것 같더라. 피아노가 조율이 전혀 안 돼 있었기 때문에 소리는 선생님의 연주를 따고 장면에서는 내 연주를 삽입한 거다. 연습생 당시에도 피아노를 배울 기회는 전혀 없었다. 작곡을 할 때는 컴퓨터를 쓴다.
Q. 전투 장면이나 액션신에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A.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전쟁신이 힘든 건 당연한 거다. 희준이 형과의 액션신에서는 그 당시 상황을 진짜로 느껴보려고 기절을 했었는데 나는 괜찮았지만 형은 계속 조심스러워하시더라. 그게 외려 마음이 안 좋았다.
▲ 프레임 밖 임시완
Q. 액션신을 위해 금주를 했다고 들었다.
A. 금주를 했다고 말했다가 주위에서 폭로가 쏟아져서 양심상 금주라고 못하겠다. (웃음) 근육이 많이 없고 술배가 나와서 술배를 좀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절제하려 했다. 술배가 나온 군인은 그 시절에 어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금주까지는 쉽지 않아서 절주하려 했다. 하하.
Q. 실제 음주 습관은.
A. 한 번에 먹고 죽자는 식으로 마시진 않는다. 여러 차례로 나눠 마시려 한다. 낮술도 좋아하는 편인데 주량이 세진 않다. 한 병은 무난하게 마신다.
Q. 극 중 박주미(고아성 분)와의 맥주 마시는 장면도 직접 의견을 냈다고 하더라.
A. 이준혁 선배님과 아성이와 같이 만든 장면이다. 원래는 맥주 캔을 따면 맥주가 옷에 튀어서 아성이가 닦아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게 통조림이다 보니 맥주가 튄다는 게 설정이 좀 어색하더라. 셋이 어떻게 하면 매끄럽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장면이다. 셋이 깔깔 웃으며 맞춰봤는데 감독님도 이 장면이 좋다고 하시고 나 역시도 만족스러운 장면이었다.
Q. 제국의 아이들에도 박형식, 김동준 등 연기를 하는 멤버들이 많다. 평소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지.
A. 일에 대해서는 얘기를 잘 안 한다. 서로 조심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주로 인풋은 어디에서 얻나.
A. 내게 주어진 대본이다. 대본을 깊게 보려는 노력을 하고 이다. 글이라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글을 보고 단어가 추상적이라고 생각이 되면 최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최대한 선명하게 색칠하는 작업을 거친다.
Q. 송강호, 이성민에게 연기 조언을 구하진 않나.
A.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다. 두 선배님들은 내게 존재 자체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분들이시다.
Q. 두 배우들을 보며 두 배우가 미적분을 하고 있는데 이제야 덧셈, 뺄셈을 하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어느 단계에 있나.
A. 괄호 열고, 괄호 닫고? 하하.
Q. 배우로서 연기를 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건 무엇인가.
A. 제일 크게 주안점을 두는 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다. 특정 신에서 어떠한 정서를 못 느꼈는데 그걸 느낀 척 연기하는 걸 경계하려고 한다. 그건 아직까진 제대로 된 연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모든 사람들이 연기를 진짜로 믿게끔 해야 한다는 거다. 내 가치관 안에서는 가짜인 연기를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표현해야 진짜로 보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
Q. 영화를 위해 '오빠생각'이라는 자작곡도 냈다. 무비토크에서 첫 공개를 하기도 했는데.
A. 드라마 '미생' 때부터 늘 생각해왔고 실천했던 건 작품을 할 때마다 연기를 하면서 느낀 감정과 정서를 노래 하나로 남기고 싶었다는 점이다. 작품의 족적을 남겨보자고 계획을 했던 게 실천이 됐고 온전히 내 욕심에 만든 곡인데 들려드릴 기회가 됐다.
Q. 대중들은 가수 임시완보다 배우 임시완의 모습이 더 익숙하기도 하다. 가수로서의 욕심도 느껴지는데.
A. 연기를 우연히 시작하게 됐는데 연기에 매력을 느꼈고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배우로서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니까 배우로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드린 것 같다. 가수도 같이 병행하고 싶기도 하다. 사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노래에 소질이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춤도 배운 것만 겨우 출 수 있다. 솔직히 가관인 것 같다. 하하.
Q. 배우 임시완의 모습이 강렬해서인지 아이돌 출신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다.
A. 처음 '해를 품는 달'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을 때 이후로 자연스럽게 모범생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다. 사실 작품도 최대한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대중이 바라는 걸 의식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의 내 모습보다 더 착하게 봐주시고 내가 실제로 그런 부분에 못 미치겠지만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대한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Q. 제국의아이들 멤버로서의 고민은 배우로서의 그것과 다르나.
A.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멤버 두 명이 군대를 갔다. 문준영은 DJ로 활동 중이고 나머지 중 일부는 해외에서 유닛 활동을 하고 있다. 멤버들과 무대에서의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지만 우리 모두는 대중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다 하고 싶다는 욕심은 내 의지대로 되는 부분이 아닐 거다.
Q. 올해 마지막 20대이기도 하다. 입대 전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데 어떤 계획을 세웠나.
A. 목표를 따로 세우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이미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보다 너무나 많은 걸 받았기 때문에 그걸로 족하다. 여기에서 더 바라면 욕심 같다. 이젠 내게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먼저 해나가야 하는 게 순서가 맞다고 생각한다. 서른 살? 우리나라 나이를 만 나이로 바꾸면 어떨까. 하하.
Q. 차기작이 '원라인'으로 정해졌다. 기존 임시완이 지닌 이미지를 깨는 작품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데.
A. 일부러 그런 이유 때문에 차기작으로 '원라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차기작을 고를 때 이전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지 않는다. 각 작품의 캐릭터를 볼 때 독립적으로 보려고 한다.
Q.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A. 보기에 편안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 같고 질리지 않는 그런 배우가 편안한 배우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