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아이돌 가수 출신 연기자가 쏟아져 나왔지만 제국의 아이들 출신 임시완(26) 만큼 어려운 연기를 한 배우는 없었다. 그는 영화 <변호인>에서 극중 공안경찰 차동영(곽도원)에게 짓밟히고, 물고문을 당했다. 수건을 덮고 라면국물을 얼굴에 붓는 고문과 막대기 하나에 몸을 의지하는 ‘통닭구이 고문’도 실연했다. 누군가는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지만 박진우 역에 몰입했던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었다. 전국관객 1000만, 그는 어린나이에 믿기 어려울 만큼 성공한 영화의 주역이 됐다. <변호인>은 수많은 찬사들만큼 많은 책임감과 고민을 그에게 안겼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쟁쟁한 선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저 때문에 영화가 방해받지 않을까. 그 걱정 때문에 개봉되기 전까지 마음을 못 놨어요. 첫 영화인데도 이렇게 관객이 많이 든 영화를 만나게 돼서 운이 좋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어요.”

임시완에게 <변호인>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극중 박진우의 모델인 실존인물 고호석씨와 같이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을 나왔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 꼭 필요한 사투리 연기도 쉬웠다. 그리고 평소 존경하던 선배 연기자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1980년대 초의 이야기잖아요. 저는 겪어보지 않았지만 부모님 세대가 살아온 시절이죠. 제가 직접 들어가서 이전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진우가 순수한 친구잖아요. 순수한 청년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망가지는 극성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의 몸은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모든 고문장면 연기를 직접 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한 고문에 따라 피폐해지는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평소 체중보다 5㎏을 불려서 초반 진우를 연기한 다음 10㎏ 정도를 감량해 나중 진우의 모습을 재현했다. 하지만 더 힘든 연기는 따로 있었다.

“중간에 어머니(김영애)와 접견하는 장면이 있어요. 고문은 물리적으로 당하는 만큼 표현하면 되지만 접견장면은 그 정서를 표현해야 했어요. 거기다 그 장면을 처음 촬영해야 했거든요. 송강호, 김영애 두 선배배우가 잘 가르쳐주셔서 겨우 찍었어요.”

그는 2010년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다. 하지만 진가는 연기에서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 허염의 아역으로 눈도장을 받은 다음 같은 해 KBS2 <적도의 남자>에서 극중인물 이장일의 아역으로 혼돈에 휩싸이는 청년을 연기했다. 웹드라마 <미생 프리퀄>을 이듬해 찍는 등 그의 행보는 속도는 느리지만 그 발걸음은 단단했다.

“두 분야의 매력이 달라요. 가수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 활발해지고 팬들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연기는 혼자서 차분하게 집중하고 분석하는 느낌이 있어요. 선배들까지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점도 다를 것 같아요.”

아무리 연기에 흥미가 있더라도 전직 대통령이었던 인물의 일대기를 다뤄 평가가 엇갈리는 영화에 아이돌 가수가 출연을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그도 극중 박진우처럼 세상에 대한 생각이 많을 20대다. <변호인>은 그의 마음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부림사건에 대해 이번 영화를 통해 잘 알게 됐어요. 아마 저라면 진우처럼 버틸 수 없었을 것 같아요. 20대들도 잘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임시완은 대답 중간 갑자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떼려고 하다가도 이내 입을 다물었다. “20대가 정치에 무심한 것 같은가”는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라고 대답한 후 기자와 나중에 따로 답을 전하기로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며칠 후 임시완은 자신이 직접 쓴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이러했다.

“정치가 배운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치가 단어가 무겁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일들에 관한 것을 바르게 알고 올바르게 두는 작업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정당하지 않다거나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게 있으면 그 문제점을 찾아보고 그게 나 개인의 문제인지 그게 아닌지, 만약 사회적인 문제라 판단되면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에 대해서는 물론 그 속의 내용이 서툰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고찰에 의한 결과물이라 생각 돼 그런 점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은 조심스러운 마음이에요.”

그는 20대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신념에 대해서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주마간산이지 않나 싶다. 소위 잘 살기 위해 바쁘게 살다가 본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냥 삶 자체가 바빠지진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는 연기자이기 앞서 타인의 삶을 자신의 몸에 끊임없이 투영하는 매개의 하나이다. 생각에 깊이 잠긴 그에게선 또래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임시완의 생각에선 더욱 많은 사람이 고민을 나누기 위해 <변호인>은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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