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40분, 49분, 55분, 58분, 1시간 15분, 1시간 25분, 1시간 35분, 1시간 43분, 1시간 47분, 1시간 53분…. 2시간짜리 영화 ‘오빠생각’을 보면서 감수성 풍부한 내가 살짝 눈물지었던 11개 지점을 표시한 시각이다. 감동을 폭발시키는 영화가 아니라 살짝 흘리고 절제하는 영화란 뜻이다.

 

‘오빠생각’이 지난달 21일 개봉해 여태껏 100만 명 남짓한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친 일은 안타깝다. 극한의 감동 혹은 기득권에 대한 불타는 증오를 강요하는 영화들이 관객몰이하며 떼돈을 버는 작금의 한국영화계에서 이렇듯 절제된 태도를 가진 영화가 묻혀버리는 현실이 슬퍼서다. ‘완득이’의 이한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한국전쟁 중 여동생을 잃은 음대생 출신의 국군 소위 한상렬(임시완)이 부모 잃은 고아들로 합창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준다는 내용인데, ‘히말라야’나 ‘국제시장’처럼 울어라, 울어라, 더 울어라, 이래도 안 울래, 하면서 밀도 높은 감동을 주입하기를 거부하는 이 영화의 태도부터가 신선한 시도인 것이다.

 

‘오빠생각’의 개봉을 즈음해 일어난 사건도 흥행의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정부 금융개혁의 일환인 ‘핀테크’의 홍보대사이기도 한 배우 임시완이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음에 따라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권에 ‘오빠생각’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한 모양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이 영화는 현 정부가 ‘미는’ 영화라는 오해를 받고 말았다. 마치 보수의 시각을 가진 전쟁영화인 양 받아들여진 것이다.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이 영화의 시각은 보수는커녕 ‘반전(反戰)’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영화는 도입부에 한국전쟁을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설명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해방을 맞게 된다. 이후 한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 아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 두 개의 정부로 나뉘게 된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이념의 대립은 점점 심해져갔고, 1950년 6월 25일 남한과 북한 간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어떤가.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 적시 없이 한국전쟁을 ‘이념 대립의 심화에 이어 남한과 북한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만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빠생각’에서 더욱 놀라 자빠질 일은 아이돌 그룹 출신 미남배우 임시완의 연기력이다. 그의 연기는 ‘절제’라는 이 영화가 갖는 태도의 연장선에서 주도면밀하게 조율되었는데, 그의 연기 내공은 단언컨대 ‘A급’이다. ‘초짜’답지 않게 임시완은 감정을 분출시키는 대신 은닉하려 든다. 영화 후반부, 총에 맞은 고아를 둘러업고 미친 듯이 뛰다가 다리에 총알이 박히는 순간 그가 짓는 표정만 보아도 캐릭터에 대한 내면적 고민을 얼마나 많이 쌓아왔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자, 메소드 연기의 달인인 필자의 표정연기를 보기로 들어보자. 보통 이런 시추에이션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보아온 주인공의 표정은 ①이거나 ②다. ①은 ‘설경구 스타일’로 고통스러운 내면을 활화산처럼 폭발시키는 방법 ②는 요즘 잘나가는 ‘유아인 스타일’로 억울함과 더불어 운명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영혼의 무게로 짓누르는 방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임시완은 ③을 선택한다.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허무함과 회한을 보일 듯 말 듯 노출한다. 표정을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능동적으로 배우의 내면을 짐작하도록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와 더불어 이성민 주연의 ‘로봇, 소리’, 정우성 김하늘 주연의 ‘나를 잊지 말아요’, 수지 류승룡 주연의 ‘도리화가’ 같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한 것도 못내 아쉽다. 감동을 강요하는 대신 조용히 눈물 한두 방울 똑똑 떨어지게 만드는 이런 ‘착한 영화’들이 점점 멸종위기에 처한다면, 앞으로 우린 스크린에서 “아버지! 제발 눈 좀 떠보시라고요!” “원수야! 죽어라. 네게 지옥으로 가는 편도 티켓을 선물해주마!”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 하면서 울부짖거나 손목을 썰어버리는 상업영화들만 마주하게 될 공산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의 기쁨, 극단의 슬픔, 그리고 극단의 증오와 분노만이 영화에서도 돈이 되고 힘이 되는 현실이 무섭다.

 
 
원문출처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2941526
 
  • profile
    스윗시완 2016.02.04 12:51
    시완이의 진가를 인정해주는 명쾌한 글이네요. 주말과 설연휴동안 오빠생각이 더 더 화이팅하길 기대해봅니다!
  • profile
    HJ 2016.02.04 15:30
    영화의 반전메세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 시완이의 연기에 대해 진가를 제대로 알아봐준 것에 대해 정말 반가운 기사네요.
  • profile
    탱글 2016.02.04 17:46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기자님이 연기를 참 잘 해주셨도라구요! 저도 정말 너무너무 반가운 기사예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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