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곳곳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디테일한 설정들이 숨겨져 있었다.

 

JTBC 수목드라마 ‘런 온’(극본 박시현/연출 이재훈) 여자 주인공 오미주(신세경 분)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큰 영화번역가다.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지그시 바라보곤 하는 오미주는 언젠가 글씨체 때문에 이름이 ‘오마주’처럼 보였던 에피소드를 언급한 적 있다. ‘런 온’은 주인공 이름대로 영화 드라마 오마주와 패러디가 보는 매력을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오미주와 기선겸(임시완 분)이 가장 처음 마주하는 순간은 임시완의 대표작인 ‘불한당’(감독 변성현) 명장면을 연상케 한다. 총 모양 라이터를 들이밀고 “이거 진짜 총이냐” 묻는 임시완은 기선겸인 동시에 ‘불한당’ 속 조현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첫 만남치고 썩 평범하진 않다.

 

또한 오미주는 기선겸과 차를 타고 가다 “여기가 같이 가는 저승길인가보다”라고 농담을 던진다. 이는 신세경 대표작이기도 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결말과 유사한 장면이다. 극 중 신세경은 차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런 온’은 그와 비슷한 구도로 두 사람을 보여주며 ‘저승길’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이 함께 빨간 스포츠카로 감독을 만나러 가는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두 사람의 대표작 모두 차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기에 ‘런 온’에서는 마치 그 비극을 새로 바꿔주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불한당’에서 큰 상징물이던 빨간 스포츠카 안, 이번에는 그 누구도 절망하지 않고 서로를 만나게 됐으니.

 

오미주가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인 만큼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도 적잖이 볼 수 있다. 오미주가 샤워를 하다가 문 사이로 빼꼼 손을 내밀 때 벽에 붙은 포스터는 히치콕 ‘싸이코’(1960)를, 동거인 매이 언니(이봉련 분)이 갈비뼈를 내던지는 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1968)에서 뼈가 날아가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일반적인 질문을 “직업이 뭐 ‘존 윅’이냐”라고 묻듯, 대사 속에도 영화가 녹아들어 있다. 오미주가 영화번역가가 된 이유도 처음 본 영화 대사에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미주는 ‘배트맨 비긴즈’(2005)‘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우리가 넘어지는 건 일어나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라는 대사를 통해 작은 설렘과 울림을 전한다.

 

기선겸이 당분간 집에 머물게 됐을 때 오미주가 하는 상상은 다름 아닌 ‘카사블랑카’(1995). 갑자기 장면이 흑백 전환되며 임시완 얼굴 위로 “here's looking at you, kids(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고 말하는 험프리 보카트 목소리가 재치를 더한다. 또한 오미주가 긴장감 넘치게 이불 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대부’(1972)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사람 북적이는 영화제 재현부터 깨알같이 스쳐 가는 봉준호 감독 닮은꼴까지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러한 디테일한 요소들은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충분히 통통 튈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 ‘런 온’은 단순한 사랑 얘기를 넘어 관계와 위로에 대해 발맞춰 가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에게 두 사람 역시 영화 속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 또한 한 편의 영화와 닮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게 아닐까

 



원문출처 :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210108074158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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