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보시기 전에... 기사 안에 영화 내용이 많으니 영화를 먼저 보실 분은 영화를 보신 후에 보세요. 

 

 

 

자극에 익숙하다 보면 어느 덧 미각을 잃게 된다. 맛을 모르게 되면 더한 자극만 찾게 된다. 좀 더 쎈 자극이 익숙해지면 결국에는 맛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갖게 된다. 맛이란 즐거움을 잃고 살아가니 즐거움을 자극으로 착각을 한다. 자극과 즐거움의 차이가 흐릿해진 요즘이 참 서글프다. 영화 ‘오빠생각’은 새하얀 도화지의 느낌처럼, 하얀 쌀밥의 맹 맛일지언정 자극과 재미의 차이를 분명히 잡아낸 한 편으로 다가올 것 같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실제 존재했던 전쟁고아 합창단의 얘기를 그린다. 실화가 주는 진정성의 무게감이 우선 전달된다. 의미의 진정성이 가슴으로 느껴지기에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한국전쟁이란 민족 최대의 비극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꽃피운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그 순수함을 닮고 싶지만 개인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남자 한상렬(임시완)과 그 주변인들의 얘기다.

 

유학파 엘리트 음악학도인 한상렬은 한국전쟁으로 눈앞에서 동생을 잃었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는 전쟁 중에서도 그를 괴롭힌다. 자신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무모한 행동은 부하들과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위험함은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신의 모습에 괴롭다. 자신을 죽이려던 인민군 소년의 모습이 그랬다. 산처럼 쌓인 시체더미가 그랬다. 살아가는 게 두려웠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일이 주어졌다. 전쟁터를 벗어나 후방으로 전출된 그는 부대 내 고아원을 돌보게 된다. 온 나라가 무덤이 된 마당에 고아원 선생님 박주미(고아성)의 해맑은 웃음은 불편하고 곱지 않았다. 그의 눈과 머리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뿐이다. 부모를 잃은 소년이 불발탄을 망치로 때려 눈앞에서 폭사를 한다. 이 아이들을 자신의 물건이라 여기는 갈고리(이희준)의 폭력은 전쟁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그의 눈에는 갈고리의 폭력이나 박 선생님의 해맑음 모두가 불편하고 폭력적이었다. 모두가 전쟁이란 괴물이 만들어 낸 상처일 뿐이었다.

 

상처를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그저 피가 나는 상처를 붕대로 싸맨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대장에게 고아원 원생들을 단원으로 한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건의한다.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집중된 부대장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잘 보일 기회란 솔깃함에 마지못해 승낙을 한다.


합창단이 구성되고 이런 사연과 저런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동구(정준원)와 순이(이레) 남매도 그중 하나다. 엄마를 잃고 아빠와 행복하게 살던 두 남매는 인민군 부역자로 몰린 아버지가 눈앞에서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한 뒤 이곳 합창단으로까지 흘러들어왔다. 한상렬의 보살핌과 박 선생님의 도움 그리고 아이들의 선함이 뭉치면서 합창단은 본래의 의미를 조금씩 찾아게 된다. 하지만 한상렬의 본 뜻과 달리 합창단은 전쟁이 만들어 낸 어른들의 폭력적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아이러니로 흘러가게 된다. 갈고리와 부대장으로 그려진 전쟁의 이기주의와 폭력성은 아이들로 대변되는 순수함과 부딪치면서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 낸다.

 

‘내가 주웠으니 내꺼다’는 갈고리의 존재와 자신의 야심만을 위해 합창단을 전쟁 지역으로 내모는 부대장의 결정권은 오롯이 한국전쟁이 만들어 낸 어른들의 폭력을 상징하는 단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원한다. 어른들의 폭력이 만들어 낸 피비린내 진동하는 세상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고. 합창단 해체를 선언한 한상렬에게 “합창단이 소위님 것이냐”며 울부짖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선함과 순수함으로 가득했다. 전쟁이란 아픔을 가져다 준 어른들의 다툼을 아이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동요 ‘오빠생각’의 노랫말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행복을 그리워했다. 그 그리움을 간직하고 느낄 수 있는 노래의 힘에 기대에 아픔을 잊고 살아가는 현재의 행복을 간직하고 싶어 할 뿐이다.

 

아이들의 이런 소망과 순수함은 그저 악인으로 만 그려진 갈고리의 속마음마저 건드리게 된다. 그 역시 전쟁이란 공간 속에서 삶에 집착했던 순수한 인물이었음을 말이다.


‘오빠생각’은 자극이 배제된 얘기다. 새하얀 맹물의 육수는 밋밋하고 싱거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 순수함의 얘기는 그 어떤 양념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의 스펙트럼을 갖는 마법을 보인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얘기를 받아들인다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잃어버렸다고 착각했던 순수함의 되새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얼마나 젖어들어 살아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너무도 순수하다. 상위에는 기름진 쌀밥 한 그릇이 있다. 반찬은 없다. 그 반찬은 관객들의 몫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오빠생각’의 맛은 당신의 잃어버렸던 미각을 되찾아주는 마법을 부릴 것이다. 개봉은 오는 21일.


원문출처 : http://www.white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02

  • profile
    sandme 2016.01.11 16:00
    이 리뷰기사에 기자님이 쓴 표현들이 너무 좋아요. 스포 안 보고싶은 분들은 아직 보지 마시구요.ㅋㅋㅋ 기사가 정말 따듯해요.
  • profile
    sandme 2016.01.11 16:45
    추천 기사로 지정됐군요. 내일 영화를 보고 오면 여태까지 올라온 리뷰 기사들을 다시 정독해봐야겠어요. 영화를 본 상태에서 다시 읽으면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느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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