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 개봉되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은 여러모로 기존 흥행 누아르들과 비교가 된다.

 

우선 제목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연상된다. 언더커버(위장잠입)란 설정은 ‘무간도’와 ‘신세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분히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과 많이 닮았고, 타란티노가 프랭크 밀러,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함께 연출한 ‘씬 시티’의 색감이나 세기말적 정서와도 맞닿아있다.

 

아무래도 한국 관객에겐 크게 히트한 ‘범죄와의 전쟁’과 ‘신세계’가 피부에 깊게 와 닿을 것이다. 어떤 점이 유사하고 다른 점은 뭘까? 세 영화 모두 폭력조직이 무대다. ‘불한당’과 ‘범죄와의 전쟁’의 배경은 부산이다.

 

내용이나 메시지에 있어서 ‘범죄와의 전쟁’은 ‘불한당’과 다소 거리가 멀다. 영화의 소재는 아버지고, 주제는 주먹보다 더 무서운 권력의 폭력이 만든 부와 신분의 세습에 대한 비판이다. 주인공은 부산세관 비리공무원에서 반(건)달이 된 익현(최민식)과 부산 최고의 폭력조직 두목 형배(하정우).

 

익현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문중의 손자인 형배의 조직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론 서로 안 믿고 철저하게 이용하는 사이. 그 틈을 노려 형배파에게 밀려난 라이벌 조직의 두목 판호(조진웅)가 나타나 익현을 유혹한다. 익현은 이 폭력조직들을 노리는 검사와 결탁해 형배를 잡게 해주고, 진짜 ‘대부’가 된 후 아들을 검사로 키운다.

 

형배는 “학생은 공부해야하고, 건달은 싸워야한다”는 지론을 가진, 단순한 폭력적 범죄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더 무서운 인물은 화려한 인맥으로 불법을 합법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부와 권력을 키우는 사회구조적 범죄를 저질러 성공하는 익현이다. 검사 아들까지 둔 익현은 ‘합법적 불법’의 판을 더 키우려 한다.

 

그건 바로 친일부역이나 정경유착 등으로 돈과 권력을 거머쥔 뒤 그걸 후대에 세습하고 있는 이 사회에 적지 않은 지도층에 대한 은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사회악을 척결하는 데 앞장서는 듯했지만 정작 퇴임 후 엄청난 범죄사실을 들켰듯이.

 

‘불한당’은 ‘신세계’에 가깝다. ‘신세계’의 주인공은 기업형 폭력조직 골드문의 일파를 거느린 두목 정청(황정민)과 8년 전 그가 행동대장이던 시절 그 밑으로 들어가 남다른 우정을 쌓아온 언더커버 임무의 형사 자성(이정재).

 

퇴임을 앞둔 강 과장(최민식)은 8년 전 날로 커져만 가는 골드문을 와해시키기 위해 패기 넘치는 신참 자성을 골드문에 심었다. 현재 자성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도 임무기간을 거푸 연장하는 강 과장에 심한 불만을 품고 있고, 강 과장은 점점 깡패로 변해가는 게 확연히 눈에 띄는 자성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자성의 가족까지 감시한다.

 

골드문의 수장 석 회장이 타살되자 그룹엔 후계자 다툼으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돈다. 유력한 후보는 정청, 또 다른 계열조직을 이끄는 라이벌 중구(박성웅), 그리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이사 중 일부.

 

정청은 서서히 헤게모니를 장악해가는 와중에 경찰청 해킹을 통해 내부에 잠입한 경찰 둘을 색출해 죽이지만 자성만은 모른 척한다. 그는 중구파의 습격에 중상을 입고 입원한 뒤 찾아온 자성에게 “너, 내가 살아나면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물은 뒤 “독하게 살아”라고 충고하면서 눈을 감는다.

 

영화는 슬쩍 바둑을 끼어 넣어 흰 돌과 검은 돌을 통해 ‘과연 경찰과 폭력조직 중 누가 진짜 선이고, 진정한 악인가’를 묻는다. 이건 ‘범죄와의 전쟁’과 ‘불한당’을 모두 관통하는 공통의 메시지다. 특히 설정이 ‘불한당’과 비슷하다. 강 과장조차도 안 믿는 자성을 끝까지 믿어준 사람은 바로 두 사람이 잡으려했던 정청이었다.

 

‘불한당’의 주인공은 언더커버 형사 현수(임시완)와 재호(설경구). 재호는 ‘족보도 없는 깡패’에서 범죄조직 오세안무역회사의 ‘넘버2’로 성장한다. 그는 감옥에서 머리회전이 빠르고, 전투능력도 뛰어나며,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굽히지 않으려는 현수를 만난다. 현수의 도움으로 견제세력의 공격에서 벗어난 뒤 둘도 없는 형제 같은 우정을 나눈다.

 

현수 역시 자신을 투입한 천 팀장(전혜진)의 의심을 받는다. 의외로 인간적이고 자신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푸는 재호를 어찌할지 갈등하지만 서서히 재호조차도 자신을 못 믿는 눈치를 보이자 정체성과 진로의 혼란을 겪는다. ‘신세계’와 매우 비슷한 구조다.

 

그러나 ‘불한당’은 관객들이 극찬했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한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와는 다른 결론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서 메시지에 차별화를 두며, 캐릭터에서 신선함을 창출해낸다.

 

앞선 두 영화는 권선징악인 듯하지만 결국 공권력 혹은 정의를 가장한 폭력과 사리사욕을 비꼰다. ‘불한당’은 그런 면에선 분명한 변별성을 갖췄다. 대신 차별화된 결론을 통해 모든 인간에 내재된 각기 다른 '참삶과 가치관에 대한 의문'을 질문한다. 그건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이방인이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경찰신분 기록이 사라진 터라 천 팀장의 마음먹기에 따라 그냥 범죄자로 남을 수도 있기에 그녀의 일방통행식 원격조정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현수는 이 사회가 버린 이방인이다. 그가 사는 곳은 외딴섬이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할 수 없는 그는 기댈 곳도, 설 곳도 없다. 자아를 상실한 로봇에 불과할 따름이다.

 

골드문을 차지한 자성과 달리 오세안에서의 입지가 탄탄한 것도 아니다. 회장 병철(이경영)이 현수를 겉으론 어여삐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 조카인 병갑(김희원)을 이용해 재호를 죽이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호의 오른팔인 현수 역시 제거대상이다.

 

현수의 운명을 백척간두에 세우는 결정적인 악재는 재호의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사실. 자신을 믿지 못해 감시자를 붙인 천 팀장, “감옥에서 썩더니 이제 깡패가 다 됐다”며 더 이상 경찰로 인정하지 않는 동료 형사, 모든 걸 떠나 진짜 형처럼 여겼지만 이제 등을 돌릴지도 모를 재호. 그 어느 곳에도 그를 구성원으로 받아주는 사회는 없다.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는 것이다. ‘신세계’에서 정청은 자성을 ‘브라더’라 부르고, 자성은 정청을 ‘형’이라 부른다. 깡패 세계에선 1살 위라도 깍듯이 ‘형님’으로 부르는 게 기본이다. ‘형’이라 부를 땐 그만큼 얕잡아본다는 의미다. 그러나 자성이 그렇게 부르고 정청이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건 그만큼 그들은 ‘직업’을 떠나 격의 없는 참된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증거다.

 

현수 역시 재호를 ‘형’이라 부른다. 때론 반말지거리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재호는 그런 현수에게서 일말의 거부감도 느끼지 않고 마냥 친근하고 예쁘게 받아들인다. 죽마고우 병갑의 “너 지금 제 정신이 아냐”라는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이간질하지 말라’는 의미로 외려 흉기를 휘두를 정도다.

 

강 과장과 천 팀장은 이 사회의 부조리고, 정청과 재호 그리고 자성과 현수는 그 부조리가 낳은 돌연변이이자 희생양이며 동시에 모든 공간의 이방인이다. ‘불한당’이 이전의 걸작 누아르와 차별화되고 새로운 이유다. 재호에겐 정청의 인간미와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최민식)의 무차별적 잔인한 폭력성이 엿보이고, 현수에게선 경철에게 아내를 잃은 수현(이병헌)의 고통과 고뇌와 허무적 폭력성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원문출처 : http://www.mediaf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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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 2017.05.14 20:50

    와 좋은 리뷰 기사예요. 근데 ((((스포 가득)))))))))이니까 영화 안보신 분들은 읽지 마시고, 나중에 영화 보고 나서 꼭 읽어보세요.
    불한당을 까뮈의 이방인, 실존주의 언급한 이유가 뭔지 대충 감 잡히는 리뷰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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