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들이 여럿 있다. 대부분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모든 상황에 항상 예외가 존재한다. 위장된 가짜들 사이에서 간혹 반짝 진짜가 그 얼굴을 드러낼 때가 있다. 우리는 이들을 ‘연기돌’,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어엿한 ‘연기자’로 인정한다. 시청자들에게 있어, 이들에게 붙은 ‘아이돌’이란 출신성분은 인사고과에 있어서 더 이상 낙하산과 같은 낙인이 아니다. 오히려 숨은 진주를 발견하는 과정의 하나로서 여겨지는 것이다. 

‘원래 자질이 있었다.’ 라고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알다시피 낙인을 벗어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욕을 먹는다. 적정 수준을 넘게 잘해내야 서슬 퍼런 눈길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무대에서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수년간 연기의 길만을 닦아온 이들의 밥그릇을 기획사 혹은 팬덤의 힘을 얻어 빼앗은 거니까. 


어떤 이들이 낙인을 벗어내는가. 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동시에 ‘아이돌’이란 출신성분을 인정하는 자다. 아니, 낙인을 벗으려 않고 무겁게 받아들이는 자다. 그래야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수반할 수 있으며, 잠재되어 있던 자질을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다. 
 
tvN 드라마 ‘미생’(연출 김원석, 극본 정유정)에서 장그래(임시완)는 낙하산이란 이유로, 첫 머리에서부터 오상식(이성민)의 눈 밖에 난다. 하지만 장그래에게 낙하산이란 것은 자신의 비루한 현 상황만을 비춰주는 조건인지라(사실 완벽한 낙하산도 아니고), 보통의 이들보다 더 많은, 그의 말 그대로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존재한다. 결국 오상식은 매순간 지나치게 진지한 이 신입, ‘낙하산’이란 낙인이 당최 어울리지 않는 이 신입을 '우리 애‘로 받아들인다. 

굳이 ‘미생’의 장그래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임시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연기를 대하는 임시완의 모습은 상사맨을 대하는 장그래와 닮았다. 

임시완은 연기를 겸업 중인 아이돌로서, 현재 멤버가 9명이나 되는 그룹 ‘ZE:A’(제국의아이들)에 소속되어 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지만, 우선 멤버가 많다는 사실은 그들이 전문적인 가수의 길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 마디로 연예인이 되기 위해 아이돌이 된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임시완이 연기에 남다른 자질을 보인 것은 확실하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KBS 2TV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아역으로 잠시 등장했을 뿐임에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까. 처음에는 어여쁜 소년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이는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가 보여준 맡은 배역에 대한 밀도 있는 이해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서, 단순히 어여쁜 소년이 아니라 절도 있는 선비, 상처를 지닌 야망 있는 남자를 느끼게끔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자질로 ‘낙하산’이란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는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의 세계는 꽤나 혹독해서. ‘한낱’ 자질 하나로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오래 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게다가 ‘한낱’ 자질을 갖춘 인물이 널리고 널렸다. 몇 순간의 임팩트 있는 역할은 맡을 수 있겠으나, 극 전체를 아우르는 비중 있는 역할, 즉 주인공은 그만큼의 내공이 있지 않고서야 한낱 자질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이거에 취해있다가는, 영원히 꼬리표는 뗄 수 없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임시완은 또 하나의 약점을 가진다. 예쁘장한 얼굴과 왜소한 체구다. 아이돌가수로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나, 연기를 하기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연기자란 맡은 역할에 맞추어 때마다 카멜레온같이 변신해야 해서, 정확히 어떠한 이미지를 갖춘 외모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 쉽다. 이리 폭이 한정되어 있으니, 제법 연기를 한다 해도 오래 가진 못하겠다 싶었더랬다.

영화 ‘변호인’에서 임시완은 명불허전의 배우 송강호와 호흡을 맞추는 영예를 누린다. 놀랍게도 임시완은 그 영광스런 자리를 그저 공으로 누리지 않았다. ‘양과 질이 다른 노력’으로, 순수한 지적 열망을 가진 대학생에서 이유 없는 모진 고문을 통해 자아가 깨진 한 인간의 모습까지 흡입력 강한 연기를 선보였다. ‘변호인’의 한 귀퉁이를 완벽하게 살려준 것이다.  

이미 정립되어 있는 거대한 판에 기가 죽지도, 밀리지도 않고 올라서 있는 임시완의 모양새는, ‘연기돌’ 임시완에 대한 한계점을 재조정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더 이상 아이돌출신의 예쁘장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연기의 세계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접근한 신인연기자였을 뿐이었다고 할까. 

장그래의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은 자신이 상사맨이라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상사맨으로서 살아남아보고 싶다는 절실함. 여러 작품들에서 느껴진 임시완의 모습은 장그래와 유사했다. ‘아이돌’이라서 쉽게 얻은 기회가 아니라, ‘아이돌’이기에 더욱 무겁고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소중한 기회로 여겼다. 그렇지 않고선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장그래가 신입사원이 될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임시완은 드라마 ‘미생’으로 ‘연기돌’이 아닌 ‘신인연기자’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했다. 송강호가 노래도 춤도 못하니 연기나 하라며 극찬 아닌 극찬을 했던 것처럼, 이제 임시완은 연기자들 사이에서 ‘우리 애’,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대중들에게 있어 실력 있는 ‘신인연기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돌에게 임시완은 하나의 좋은 예다. ‘아이돌출신’이란 꼬리표는 특권이라기보다 낙인이기에, 기회는 쉽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그만큼 쉽게 ‘반짝’하고 사라질 수 있다. 진짜보다 더한 노력,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을 할 자신이 없다면, 괜히 남의 밥그릇 뺏을 생각 말고 그냥 노래와 춤과 본인의 팬덤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나을 게다.

원문출처 : http://openapi.naver.com/l?AAAB3ITQ6CMBBA4dMMy2boD7SLLhThHhNmDASjtVRNby+avMXL93xJrhHGAcII3v7GnyEMfwmHNKUmiXf57M0mNc6a0Ekw1pFFNsi+l04TOw4iNHOzZLnGpZQE5gR6OipvpvVWFe0riZofasuHZiFWaUkGzEQrg7m0tu2t7rxDj0H3BlF/Aew+gyqe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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