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드라마에서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포착된 인물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우연이 아니라면, 스쳐지나가도 모를 사람들은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게 되고, 낯설고 이상한 대상을 결국 사랑해버린다. 낯선 타인이 연인으로 되어 가는 과정, 로맨스 드라마는 사랑의 낭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크고 작은 걸림돌들을 두 사람이 걸어가는 곳곳마다 전략적으로 배치해놓는다. 걸림돌은 때론 관습적이고 뻔한 방해요인으로 작동되고, 그 돌을 치우는 과정도 너무나 단순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속삭였던 사랑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드라마 <런 온>은 뻔한 로맨스 드라마이다. 하지만 <런 온>을 흔한 로맨스 드라마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에 대해 비슷한 방식이면서도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는 로맨스를 다루지만, 그 과정은 단지 사랑의 완결이 아닌, 한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인 까닭이다.

 

  드라마 <런 온>에서 기선겸(임시완)은 단거리 육상선수이다. 그의 신체는 목표지점을 짧은 시간 안에 완주하는 일에 단련되어 있다. 기선겸이 단거리 육상선수라는 직업으로 엮인 것은 그의 신체리듬만이 아니다. 그는 앞을 향해 빠르게 질주해야 하는 삶에도 익숙해진 인물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족을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국회의원 아버지 기정도(박영규)에 의해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해오며 살아온 기선겸에게 삶은 늘 단거리 육상 경기였다. 짧은 시간 안에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옆을 돌아볼 시간도,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진 그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삶에 익숙하다. 돈 많은 아버지, 국민 배우 어머니, 프로 골프 선수 누나라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가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선수이며 스포츠 의류 모델이기도 한 기선겸은 따듯하고 다정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인물이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그가 동료선수 몇몇에게 미움의 대상인 이유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 보이는 태도 때문이다. 기선겸은 동료선수 권영일(박성준)에게 매번 1위를 놓치며 2위권 안에 머물러 있지만 조급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대해 욕심도 집착도 없지만 그는 늘 사람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겉으로는 완벽해보이지만 그의 결핍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배려에서 비롯되어 있다. 기선겸은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사랑할 자리를 타인에 대한 예의로 채웠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는 민감하지만 나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기선겸과 달리, 오미주(신세경)는 영화에서 번역 일을 하는 번역가이다. 그녀는 수많은 영화의 등장인물의 언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영화 속 상황이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녀는 난해한 영화 번역을 위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같은 장면을 수십 번 돌려보는 작업을 반복한다. 오미주는 수많은 영화에서 상황에 따른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정작 나와 깊숙이 관계된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한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홀로 성장해오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익숙한 오미주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잃어버릴 만큼 관계가 깊어지면 늘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곤 했다. 누군가를 의지했던 적이 없었던 오미주는 사랑의 관계에서 항상 자신의 과거를 되새기며,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 적이 많았다.

 

  자신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한 기선겸과 나를 지키거나 잃지 않는 것에 집중했던 오미주,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소통의 방법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라마 <런 온>에서 그들의 소통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상대방을 향한 막연함에 기대지 않는다. 드라마 <런 온>은 상대방에 의해 작은 변화가 생기고, 공고했던 자신의 일상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나를 발견하게 되고 소통이 시작된다. 기선겸은 오미주와의 만남을 통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닌 반환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는 앞만 보고 달리다가 스쳐지나간 순간들은 단지 지나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앞이 아닌 옆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기선겸은 타인에게만 향했던 시간들이 나를 위해서도 충분히 사용되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고통에 익숙해진 기선겸을 향한 오미주의 애정 어린 위로로부터 발생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극복이란 게 꼭 매 순간 일어나야 되는 건 아니에요.”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보다 가족을, 회사를, 후배를 먼저 생각하며, 자신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기선겸을 향한 오미주의 말은 연인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사랑의 쌍방향성을 드라마 <런 온>은 균형감 있게 실행하고 있는데, 기선겸에 의한 오미주의 변화 역시 그러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미주는 수많은 영화를 번역하며, 감정과 관계에 따라서 번역하는 뉘앙스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영화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영화의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을 했고, 영화 번역가로써 그 일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기선겸을 만나면서 실제 그녀의 삶에서 누군가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철저히 고민하게 된다. 오미주에게 기선겸은 수십 번을 봐야 이해될법한 난해한 영화보다 더 어렵다. 오미주가 기선겸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문제들을 마주하면서부터이다. 오미주는 번역가로서 영화 속 인물을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나와 깊숙이 관계된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늘 기댈 사람 없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한 그녀에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자존심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오미주에게 ‘나’의 정체성을 흔드는 사랑은 늘 두려움이었고 도피의 이유였다. 이런 그녀에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익숙한, 타인의 고통에만 예민한 기선겸은 기댈 곳이 되어준다.

 

  사랑의 힘이 누군가의 숨겨진 역량과 가치를 발견해주는 것이라 한다면, <런 온>은 그러한 사랑의 긍정적 힘을 발견할 수 있는 드라마이다. 상대방에 대한 맹목적 사랑, 사랑에 대한 쟁취를 위한 순간적 변화가 아닌,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 무엇인지에 대해 이 드라마는 잔잔하게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완전한 결합을 의미하는 해피엔딩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인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이미 끝나버린 것처럼 보이는 사랑도, 긴 시간 안에서는 쉽게 결말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빠른 시간 안에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일 수 있다. 사랑 또는 인생도 정해진 속도에 맞춰서 결승점에 도달하기보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원문출처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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