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임시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떠오른 문장이다. 요즘은 ‘꽃길만 걸으라’는 게 하나의 응원이자 축사인데, 그에게는 그런 응원이 필요없어 보인다. 그는 척박한 땅을 꽃피는 자리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데뷔 7년 만에 〈불한당〉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배우 임시완을 만났다.

 

카페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귤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제철도 아닌데 웬 귤인가 싶어 관계자에게 물으니 임시완이 가져다 두었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기자를 배려한 준비다. 정작 본인은 “사실 제가 좋아해서”라며 쑥스러워 했다. 사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인터뷰를 준비하다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영화 〈불한당〉 촬영 당시 임시완은 차 트렁크에 술을 실어다 날랐다고 한다. 스태프들이 마실 술이었다. 현장에는 항상 술자리가 있다. 기왕 마셔야 하는 술이라면 조금이라도 몸이 덜 상할 술을 마시자는 의미였다. 가장 막내 스태프까지 그의 잔을 받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생전 처음 들어본 이야기’는 아니다. 임시완은 처음 변성현 감독과의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다”고. 사실 그렇다. 교도소에서 피어난 브로맨스나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는 장면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당당히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등 장르 영화 중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3~5개 작품이 초청되는 비경쟁 부문이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2005년 〈달콤한 인생〉, 2008년 〈추격자〉, 2014년 〈표적〉, 2015년 〈오피스〉, 2016년 〈부산행〉 등이 다녀왔다. 개봉 전 칸 초청 소식은 〈불한당〉에 대한 사전 검증이 됐다. 비슷해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뭔가 다르다. 이 영화는 비정하되 비장하지 않다. 인물들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팽팽해지기보다는 느슨해진다. 영화 속 인물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너털웃음을 짓는다. 〈불한당〉이 지닌 한 끗의 차이다. 


비로소 ‘불한당’이 된 배우 임시완

 

임시완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사실 이 영화는 그가 참여한 작품 중에서 ‘가장 스트레스 없이’ 만든 영화다. 얼핏 이해가 잘 안 간다. 〈불한당〉은 쉬운 영화가 아니다. 피와 살이 튀는 액션에, 4개월 동안 닭 가슴살만 먹으며 몸을 만들어야 했던 강행군, 대선배 설경구와 투톱이라는 부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장에서 즐거웠던 이유는 그가 비로소 긴장의 ‘땀을 흘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한당의 한자는 아니 불(不)에, 땀 한(汗), 무리 당(黨)으로,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이다. 

“〈불한당〉의 현수는 소진되는 인물이에요. 인생에 뚜렷한 목표나 꿈이 없죠. 그가 지키고 싶은 건 오직 엄마뿐이에요. 그런데 그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 현수에게는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거죠.”

 

〈불한당〉의 초반, 현수의 얼굴은 우리가 알던 임시완의 얼굴이다.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그리고 그 세계의 실권자는 그를 눈여겨본다. 임시완과 임시완이 맡은 역할은 어디서 밉보일 이들이 아니다. 〈미생〉의 장그래도 그랬고, 〈원라인〉의 민대리도 그랬다. 그를 처음 연기의 길로 인도해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꽃도령 허염은 또 어떤가. 〈변호인〉의 진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인물이었다. 〈불한당〉에서 어둠의 1인자를 꿈꾸는 재호 역의 설경구는 영화 처음부터 “그냥 임시완을 사랑하기로 맘먹었다”고 했다. 임시완은 그런 맘을 먹게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배우다. 

“설경구 선배님은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나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실제로는 형이라고 불러요. 현장에서 한 번도 대선배로서의 권위나 나이 차이로 인한 위화감을 느끼게 한 적이 없으세요. 〈불한당〉에서 현수가 재호를 ‘형’이라고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거예요.” 

 

몸을 던지는 액션연기야 각오했던 일이다. 액션스쿨을 다니고, 수련을 하는 일은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다만 그가 주의했던 건 부상이다. 그는 영화 〈오빠생각〉의 한상렬 소위를 연기하다가 부상을 입은 일이 있다. 주연 배우의 부상은 현장을 올스톱시킨다. 다음 액션연기에도 영향을 준다. 그때의 기억은 액션만큼 중요한 건 ‘부상을 입지 않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한 번 다치니까 액션을 할 때 공포가 생기더라고요. 그걸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실 〈미생〉에서도 액션은 있었습니다. 변요한 형과 제가 한 몸싸움은 저희 둘이 현장에서 만든 액션 신이었어요.(웃음)” 

다행히 이번 〈불한당〉에서는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 현장의 호흡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개봉이 기다려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제가 원래 저를 좀 괴롭히는 스타일이에요.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불안하죠. 어떻게 웃을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도 다 준비해요. 그런데 〈원라인〉과 〈불한당〉은 달랐어요. 준비를 하되, 현장에서는 저를 자유롭게 놓아두었어요. 〈불한당〉에서 설경구 선배와 바둑판 위에서 ‘알까기’를 하는 장면은 아무 준비 없이 찍은 거예요. 현장의 느낌이 그대로 담겼죠. 그런 장면들을 보니까, ‘아 모든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덕분에 〈불한당〉은 그가 처음으로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이 됐다. 이전에는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서 잘 보지 못했다. 잘못한 점들이 보이고, 부족한 지점이 눈에 띄어 참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여전히 부족하고 미진한 지점이 보이지만, 그 감정이 괴로움만은 아니다.

“평소 제가 좋아하는 영화도 ‘영화 같은 영화’예요.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이 보이지 않는 영화요. 〈불한당〉은 그런 영화인 것 같아요. 인물 한 명 한 명이 따로 보이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요. 영화인데 만화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소장해두고 술 마실 때 한 번씩 꺼내서 틀어 볼 것 같아요.” 


살다가 생각나면 한 번씩 틀어 볼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임시완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고 했다. 〈원라인〉을 찍을 때는 청년들의 삶, 비정규직의 실태 등에 천착했다. 〈미생〉과 〈변호인〉으로 한 시대의 ‘청춘의 얼굴’이 된 후 그는 작품의 연장선 위에서 배우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운명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어떤 작품을 선택하느냐’보다 ‘어떤 작품이 내 삶에 찾아오느냐’가 배우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원래 저는 논리적인 사람이에요. 일이 정리가 되고, 생각에 확신이 서면 움직이죠.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길은 제 의도와 상관없이 열리고, 그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배워요. 그렇다면 다음번의 작품은 나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까를 기대하게 됐죠. 제 성향도 감성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문득 있어서다. 〈변호인〉으로 천만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생〉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배우가 된 덕도 있다. 한 번도 연기력 논란에 빠진 일이 없는 이 배우는 작품 안에서도 ‘기대, 그 이상’을 보여준다. 

“과분한 칭찬을 받는 걸 알고 있어요. 초반에 너무 운을 다 써서 나중에 운이 사라지면 어쩌나 싶은 조바심도 있고요. 하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더라고요. 제가 느낀 대로, 또 배운 대로 가보려고 해요. 제가 연기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게 진짜 같을까’라는 질문 하나예요. 보는 사람이 이걸 ‘진짜’로 믿게 하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좋은 감독을 만난 것도 그의 운 중 하나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만난 〈해를 품은 달〉의 김도훈 PD는 그의 초심을 다져준 존재다. 그는 임시완에게 “여기에는 주연도 조연도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다”라고 알려주었다. 그 태도가 지금까지 임시완을 지탱해준 힘이다. 주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매 작품을 완수할 수 있는 이유는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없는’ 초심이 그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연륜이 더 쌓였을 때 연기를 했더라면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불한당〉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지금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도 있으리라고 믿어요. 현수는 처음에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점점 불한당의 모습으로 변해가잖아요. 그런 변화는 지금이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현장에는 ‘임시완 존(zone)’이 있었다고 한다. 임시완이 감정을 잡고, 그 선을 붙들고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는 자리다. 그가 그 존을 이용한 것은 딱 두 번이다. 재호 역의 설경구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다. 평소의 그라면 여러 계획을 세우고 완벽한 준비를 했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감성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촬영 초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새벽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요. 내가 생각하는 현수와 감독님이 그리는 현수 사이의 간극이 없기를 바랐거든요. 그렇게 맞추어가다 보니까 둘의 그림이 일치하는 지점이 생겼어요. 그 후로는 제가 느끼는 대로 표현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생겼죠.”

설경구는 모든 장면에 치열하게 임하는 임시완을 보면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젊은 감독과 스태프들을 보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한 분야에서는 ‘뾰족’한 젊은이들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현장에 임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그런 의미로 설경구에게도 이번 작품은 뜻깊다. 〈박하사탕〉 이후 17년 만에 칸에 간다. 

“아마 17년 전 설경구 선배의 마음이 지금 제 마음같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리둥절하고,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칸에 가는 게 온전히 제 힘만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 경험에서 제 삶을 바꾸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저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 선배님 뒤만 졸졸 쫓아다닐 작정입니다.(웃음)”

인터뷰를 하며 나누어 먹은 귤은 끝물같지 않게 신선하고 향긋했다. 아이돌을 지나 배우로,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며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처럼 웃으며 가보려고 한다. 꽃길이 아니면 ‘꽃을 심으면서 가면 되지’ 싶은 여유로운 마음이다. 칸에 다녀오면 그에게는 군 입대가 기다린다. 스물아홉,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미루어둔 숙제를 하러 간다. 와타나베 가즈로는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라는 책을 썼다. 군대가 그에게 꽃길은 아니다. 지금 같은 행군이라면 그곳에서도 그는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

 


원문출처 :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3&nNewsNumb=20170524826&nidx=2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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