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직설적으로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연출 이재훈, 극본 박시현)은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 기선겸(임시완 분)과 남들의 말을 번역하는 직업을 가진 오미주(신세경 분)이 만나 각자의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이야기. 묘하게 핀트가 엇나간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이 어느새 서로와의 대화에서 울고 웃게 되며,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세상 또한 읽게 됐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은 단순히 이 두 사람의 로맨스라고만 꼬집을 순 없다.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두 주인공 기선겸, 오미주의 시선 속에서 시청자 역시 다양한 뿌리 깊은 병폐, 편견을 읽고 함께 분노하며 또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 이 드라마를 함께 달리고 있는 시청자에겐 너무나도 영광인 순간순간들이었다.

 

먼저 기선겸은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육상계 고질적인 선후배간 폭행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자신을 곧잘 따르는 후배 김우식(이정하 분)이 지속적으로 선배들에게 폭행 당한 정황이 포착되자 그대로 되갚음해 준 뒤 '내가 처벌받을 테니 너희도 처벌받으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 이는 자신의 의사를 내비치지 못하고 살아온 삶, 유일하게 키워온 교육자라는 꿈까지 건 선택이었다.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기선겸이 바라보는 날카로운 세상, 그에 대한 예민한 고발이었다.

 

오미주의 세상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과 교수라는 사람은 술자리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국회의원인 기선겸 부친 기정도(박영규 분)는 돈으로 상대를 모욕해도 되는 권리를 살 수 있는 양 굴었으며 있으나 마나 한 친구는 그녀가 보호종료아동이란 사실을 상처 주기 위한 무기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미주는 참지 않았다. 오미주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맞섰고 반박했고 이것들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여자라서, 가난해서, 부모님이 없어서 가해지는 폭력들에 겨루는 예민한 말 끝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런 온' 속 많은 인물들은 자신을 향한, 또는 세상을 향한 불합리에 예민한 시선을 보여줬다. 서단아(최수영 분)은 오직 남자라는 이유로 후계 자리에 앉은 이복 오빠에게 날을 세웠다. 여자이기 때문에 홀로 덮어쓰게 된 '혼맥 효도'에서 벗어나고자 한 레즈비언 거짓말을 몸에 두른 채 "너나 나나 여자 좋아하고 최고경영자 되고 싶지. 근데 내가 하면 비정상이고 네가 하면 정상이래. 너랑 나랑 타고난 거 딱 하나 다른 거 성별인데"라는 말에선 그녀가 받아온 성차별이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외에도 '런 온'은 지나가는 모든 인물들이 세상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기선겸의 모친 육지우(차화연 분)은 사진에 찍히는 탓에 숍에 들리는 상황을 "코르셋 조인다"고 비꼬 듯 표현했고, 똑같이 사회 생활을 해놓고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남편 기정도에겐 "내가 애들 교육에 매진했으면 칸의 여왕 됐을까? 신사임당 됐지"라고 일침 했다.

 

그리고 이런 육지우는 톱스타임에도, 그 탓에 조금은 소홀한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비호감의 대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에겐 초면에 얼평(얼굴평가) 대신 눈빛을 칭찬해 호감을 받는 선을 지키는 인물이었고, 자식에겐 바쁜 커리어 속에서도 섬세한 배려를 하곤 하는 엄마가 됐다. 자식들과 살갑고 다정한 엄마 역할이 낯간지럽고 어색하다면서도, "대한민국 워킹맘 참 엿 같다. 그치?"라며 웃은 그녀는 위대한 여배우이자 동시에 엄마였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예민한 시선을 유지하되, 세상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 드라마 건드리고 있는 운동계 병폐, 가난과 고아에 대한 편견, 성적인 희롱과 차별 등.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드라마의 서사용 요소에 그치지 않고 살아 숨 쉬며 기선겸, 오미주가 사는 세상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렸다.

 

이토록 세상을 예민하게, 말 끝을 세우고 바라보는 드라마 '런 온'.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점이다. 그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기선겸과 오미주가 서로에게만큼은 다정한 말씨로 위로를 건넬 때, 시청자 또한 그 속에서 보듬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만다. '우리가 넘어지는 건 일어나는 걸 배우기 위함이다' 그 말이 얼마나 따스한지, '왜 본인이 하는 걱정에 본인만 없는데'라는 꾸중이 왜 그리 다정한지. 단순한 사랑만이 다가 아닌, 예민하지만 따뜻한 이 드라마를 시청자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원문출처 :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2012311129486110

  • profile
    사랑해 2020.12.31 11:56

    뉴스엔의 리뷰 기사들은 단순 내용 나열이 아니라 깊이가 있어서 드라마 리뷰지만 추천기사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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