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송된 tvN <미생> 9회에서는 원 인터내셔널의 신입사원인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률의 고난사가 펼쳐졌다. 시청자들이 처음 맞닥뜨렸던 사회에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부서의 모든 일에서 배제되는 안영이(강소라 분)는 커피 심부름부터 쓰레기통 비우기까지 부서의 허드렛일을 도맡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는 것이다. "상사가 잘 대해준다"고 자랑이 입에 붙었던 한석률(변요한 분)도 알고 보면 나을 게 없다. 입에 발린 말 뒤에 결국 제 일까지 떠맡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한 장백기(강하늘 분)는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제 겨우 한 팀으로 인정받는가 싶었던 장그래(임시완 분) 앞에는 인격적 모욕을 마다치 않는 박 과장이 등장한다.

장그래는 박 과장(김희원 분)의 신발 심부름까지 한다. 김 대리(김대명 분)는 그런 장그래에게 결국 볼멘소리를 한다. "당신은 마치 사회에 갓 나온,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장기수 같다"고. 그런 김 대리의 불만에 장그래는 덤덤하게 말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역류에 대응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역류가 거셀 때는 때론 그저 순한 흐름이 되어 그 역류를 맞이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고. 

<미생>은 현실을 복기하는 듯한 공감을 준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촌철살인의 해석을 곁들인다. 역류를 견디는 방법 같은 식이다. 거기에 그저 현실을 반영하는 감동을 넘은 <미생>이란 드라마의 힘이 있다. <미생>이 주는 힘은 자기계발서들이 앞다투어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던가, '백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던가, 아파도 괜찮다는 식의 덕담과는 궤를 달리한다.  

드라마의 제목인 '미생'이 바둑 용어에서 출발하고, 겨우 회사에 살아남은 장그래를 보고 오 과장(이성민 분)이 '완생'을 운운하듯이, <미생>은 회사와 사회생활을 '바둑'에 빗대어 설명한다. 바둑이란 무엇인가, 가로, 세로 40여cm의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장기판처럼 노골적으로 왕과, 차, 포, 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세를 불려 적의 집을 에둘러 잡아먹는다. 그리고 장그래는 비록 실패했지만, 승부사로 조련된 사람이다. 그 승부사는 원 인터내셔널에 던져졌다. 전쟁터가 바둑판에서 상사로 바뀐 것이다. <미생>은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직장인을 전제로 한다. 

'인천상륙작전' 속 치열한 삶, 윤태호 작가의 세계관 있었다

전쟁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떨까. 정윤정 작가의 각색을 걸쳐 김원석 PD의 디렉팅으로 다듬어진 작품이지만,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윤태호 작가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얼마 전, 윤태호 작가는 <인천상륙작전>을 완성했다. 6·25 전쟁에 던져진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맏형 상근은 뒤늦게 한강 철교를 건너 피난을 가던 중 폭격을 맞아, 불구가 되었다. 살아있다는 기쁨도 잠시, 가족들은 가장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족은 살고자 한다. 부인은 남편을 업고 다니며 구걸하고, 필요하다면 부역 연설도 한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서도 자신조차 죽을까 차마 아들이라고 밝히지 못한 아이는 살아남는다. 굶어 죽는 자가 태반인 거리에서 죽은 자의 주머니를 뒤지고, 거리에 나뒹구는 먹을거리를 마다치 않고 살아남는다. 신문 연재분 만화는 생존의 형형한 눈빛으로 미군이 주는 초콜릿을 받아먹는 아이에게서 끝난다. 

전쟁 속 인간 군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속이고 기만한다'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이후 그의 삶이 결정된다.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동생은 허망하게 상륙 작전의 희생양이 되고, 부역을 마다치 않은 형은 결국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전쟁터에서 윤태호 작가가 말했던 것은 <미생>에서도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듯하다. 삶은 우리에게 가혹하고,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역류에 맞서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겼던 것은 장그래가 선택한 방식이다.

'그까짓 바둑판' 같은 인생,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삶

15일 방송된 10회가 그린 박 과장의 몰락은 그가 선택한 방식이 자초한 결과다. 박 과장은 성희롱하고, 인격 모독을 하는 나쁜 놈이었지만, 오 과장은 그런 그를 '보상'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상사라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한 끼의 회식 외에 돌아오는 보상이 없는 회사에서 스스로 보상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가상의 회사로 인해 감사를 받고,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다. 그저 나쁜 놈이 아니라 원 인터내셔널이란 전쟁터에서 그가 선택한 삶의 결과다. 이런 그의 방식은 접대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갖은 수를 짜내던 오 과장의 맞은 편에 있다. 

스스로 '보상'을 취했던 박 과장도, 알아주지도 않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애쓰던 오 과장도, 인격적 모독조차 받아내는 장그래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한낱 '넥타이 부대' 혹은 '유리지갑'이라고 만만하게 여겨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전쟁터의 졸처럼 쓰고 버려져도, 때로는 역류가 되어 반격해도 그까짓 바둑판과 같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까짓 바둑 이기건 지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듯이 원 인터내셔널 직원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사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생>은 거기에 한 마디를 더한다. 그래도 바둑이라고. 그건 자기계발서의 위로로 설명될 길 없는 삶의 엄정함이요, 한 개인이 짊어질 삶의 무게다. 어린 시절 고사리손으로 바둑돌을 집어 들기 시작한 이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을 온전히 걸었던 그 시간의 무게 같은, 때로는 그 무게보다 더하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곳이 바둑판이다. 우리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 보기엔 겨우 그것이라도 내가 짊어지고 갈 삶이다. 삶의 비극성조차 내 것으로 받아들인 긍정성이다. <미생>이 보여준 삶의 긍정성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흔한 덕담이나 위로와 다르게 묵직하다.



원문출처 : http://openapi.naver.com/l?AAACWLSw6DMAxET2OWKCThk0UWLZ9Vdz1BFLsCVQk00FbcvoZKlubNG/n1prRb6FswPTT6gOYKpj2NYZNt+0I20nfNnrRbL50oyShdOi1QCWxqqqTDEg2R85iNiR523LYF1AXkwHf85tF9KOV+DiyCmyJHIod5HCOoIcxIoLrbvQNZhQmZV/LM64QFl0JUXOZzELpmdn8WQopamcr8AHsLdE/I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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